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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진인과 신비한 단약들

발행일
2021/11/16
검수완료
에디터
에디터L
코너
수수께끼 가면 연구자의 요괴연구소
'경복궁 괴물투어 탈환작전 핸드북' 중 금호진인 일러스트
여우요괴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마 구미호를 떠올릴 것입니다. 구미호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변화무쌍한 둔갑술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고전소설인 <쌍성봉효록>에는 독특한 여우요괴가 등장합니다. 바로 금호진인이라는 존재로 신기한 약을 만들어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변하게 하거나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등 다양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쌍성봉효록>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좌승상인 임규의 첩이자 임효영의 어머니인 양씨부인은 자신이 가장 먼저 아들 효영을 낳았지만 혼인시키지 않고 서얼 취급을 하자, 불만을 품고 동생인 양생, 양생의 친구인 탈목생, 기생인 취운 등과 계교를 꾸며 임규의 본처의 소생인 임백영, 임중영, 임성영을 모두 해치워버리고 자신의 아들인 효영을 결혼시켜 임씨 집안을 차지하려고 한다. 양생과 탈목생은 도화산에서 살고있는 도사인 금호진인에게 먹으면 마음먹은 대로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의 얼굴로 바꿀 수 있는 개용단(改容丹)이라는 단약을 사와 그 단약을 기생 취운에게 먹인다. 취운은 도인으로 변하여 임규의 둘째 아들인 임중영과 그의 아내인 소씨부인 사이를 이간질하거나, 임중영의 집에 불을 지르고, 소씨부인을 납치 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월관도사의 훼방으로 계교는 모두 실패로 돌아간다. 이에 양생과 탈목생은 신비한 단약을 만들어 파는 금호진인이라는 도사를 직접 모시고 양씨부인을 찾아왔다. 금호진인은 강주 심양현 도화산의 한 도관에 살고있는 요망한 도사로 일명 호선랑이라고도 하는데, 본래 사람이 아니라 도화산 바위 동굴 속에서 수천 년을 묵은 털 돋친 암 여우였다. 그녀는 수천 년에 걸쳐 도를 닦아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후 도관을 열어 요술로 사람을 홀렸으며, 뒷동산에는 온갖 약초를 심고는 백주 대낮에 마을을 다니면서 동네 어린이들을 잡아와 그 심장과 간, 그리고 그 피를 약초와 섞어 환약(幻藥)을 만들어 팔아 많은 돈을 벌었다. 그가 만든 단약은 다음과 같다.
미혼변심단(迷魂變心丹) - 정신을 혼미하게 하여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약이다. 이 약으로 부부사이를 흐트러뜨려도 시부모님들의 중재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시부모님들에게 먹여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부부사이를 갈라놓는다.
회심단(回心丹) - 도봉잠이라고도 불리는데 사람의 마음을 돌리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부부사이가 나쁠 때 남편에게 이 약을 먹이면 사랑하는 마음이 돌아와 삶과 죽음도 잊은 채 정을 맺게 된다.
개용단(改容丹) - 이 약을 먹으면 마음먹은 대로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의 얼굴로 바꿀 수 있다. 주로 부부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악녀가 개용단을 먹고 아내의 모습으로 변해 부정하거나 나쁜 짓을 하는 경우도 있고 마음에 드는 여성을 범하기 위해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는 등 나쁜 일에 많이 쓰인다.
회면단(回面丹) - 개용단으로 바꾼 얼굴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약이다.
혼신보명단 – 이 약을 먹으면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이 바로 옆에 있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금호진인은 양씨부인에게 미혼변심단(迷魂變心丹)을 주며 임규의 부모님에게 그 약을 먹이라고 했다. 환약을 먹은 임 태사 부부는 정신이 혼미해져 양씨부인과 그의 아들 임효영만 총애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둘째 아들인 임중영과 셋째 아들인 임성영이 임효영을 때렸다는 모함을 곧이곧대로 믿고 두 사람을 누실에 가둬버린다. 양씨부인은 임규의 아들 형제를 두 명을 순식간에 정리해버린 금호진인의 능력에 감탄하며 지금 출전 중인 장남 임백영도 해칠 계교가 없겠냐고 물어본다. 금호진인은 자객을 보내라고 지시하였고 이에 탈목생의 친척인 탈목교가 임백영을 암살하러 가지만 월관도사의 방해로 암살은 실패로 돌아가고 임백영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공까지 세우게 된다. 그러자 금호진인은 개용단을 사용하여 자신은 임중영으로 기생 취운은 임성영으로 변신한 뒤 궁에 들어가 옥새를 훔친다. 그리고 다시 개용단으로 임씨 집의 종으로 변신하여 황제에게 옥새를 바치며 임씨 삼형제가 역모를 꾀하고 옥새를 훔쳐간 것이라고 거짓을 고한다. 황제는 임씨 삼형제를 잡아들이고 삼형제는 심문을 받고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계교를 써서 삼형제를 위기에 빠뜨린 금호진인은 임씨 형제가 처형당하는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개로 변신하여 궁으로 향하다가 월관도사와 조우하고 말았다. 월관도사가 요괴를 제어하는 술법의 진언을 외우자 금호진인은 정신이 아득해지며 요괴의 정기를 다 잃었다. 하지만 금호진인은 몸을 피하기 위해 도술을 사용하여 새로 변신해 날아갔다. 이에 월관이 몸을 띄워 공중에 오르니 오색구름이 일어나고 금빛이 일렁거렸다. 새로 변했어도 잡힐 것 같다고 생각한 금호진인은 사람으로 변하여 검은 구름을 타고서 달아났으나 금호진인의 요술로는 월관도사의 도술을 당해내지 못했다. 결국 금호진인의 뒤통수에 부적을 붙여 무력화 시킨 뒤 철삭(鐵索)으로 그녀를 결박했다. 월관도사는 금호진인을 황제 앞으로 끌고가 삼형제의 누명을 풀어주었다. 금호진인은 심문 끝에 모든 죄를 실토하였다. 결국 그녀는 목이 잘리고 가죽은 벗겨진 뒤 불에 타버렸다. 미혼변심단을 먹고 정신이 혼미해졌던 임태사와 그 부인은 월관도사사 만든 선약을 먹고 다시 총명이 돌아와 양씨부인을 옥에 가두었고 임효영은 달아나게 된다.
금호진인은 여기서 죽지만 그가 만든 단약은 <쌍성봉효록>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고전소설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완월회맹연>에서는 악인 장손탈이 태감인 진탐을 살해하고 개용단으로 진탐으로 변신해 진탐이 악인으로 오해받게 만든다.
<현봉쌍의록>에서는 진승상의 아들인 진한림과 시부모님이 둘째부인인 요귀주만을 사랑하자 첫째 부인인 윤씨부인이 진한림과 시부모님께 회심단(回心丹)을 먹여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요귀주를 모함한다.
<현수문전>에서는 여진족의 장수 진도관이 혼신보명단을 먹어서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 뒤 송나라 진영에 들어가 박여상과 장계원의 목을 베어 들고 나온다.
<명주옥연기합록>에서는 교주(嬌珠)가 현희문에게 미혼단(迷魂丹)을 먹여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게 만든 뒤 구소저를 모함하여 옥에 가두게 한다.
‘단약모티프’라는 유형이 현 학계에서 생길 정도로 고전소설에서 단약이라는 요소는 흔히 등장합니다. 또 고전소설에서 서로 설정이나 세계관을 공유하곤 하는 것을 종종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금호진인이 만든 약이 다른 소설에 등장하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닙니다. <소현성록>에 따르면 금호진인이 살던 강주 심양현에 단약을 만드는 무리들의 본거지가 있으며 이 설정이 후대의 작품에서 계승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악인들에게 단약을 판 무리와 금호진인을 연결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