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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산 화마

발행일
2021/11/09
검수완료
에디터
에디터L
코너
수수께끼 가면 연구자의 요괴연구소
“하하하! 뭐가 경복궁이냐? 내가 끝장내주겠다.”
경복궁에 가보신 분들이라면 그 앞에 해태조각상 둘이 나란히 있는 것을 다들 보셨을 겁니다. 그 해태들의 시선은 관악산을 향하고 있는데 기 이유가 관악산에 있는 화마(火魔)의 전설과 관련이 있습니다.
옛날에 경복궁에 큰 화재가 잇따라 일어나 왕은 무당을 불러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습니다. 점을 쳐본 무당은 경복궁 앞에 있는 관악산이 문제라고 했습니다. 관악산은 풍수지리상 능선이 타오르는 형상을 한 불기운의 산이며 그 때문인지 관악산에 강한 힘을 가진 화마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화마는 너무 강력해서 한 번 노려보기만 해도 그 장소에 불이 나는데 그 화마가 경복궁을 노려봤기 때문에 성에 불이 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당장 물의 기운을 가진 해태 조각상 둘을 만들어 관악산을 노려 보게 했으며, 관악산의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관악산에 우물을 하고 그 안에 구리로 수신인 용의 조각을 만들어 넣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복궁에 가보면 드무라는 거대한 솥 모양의 용기를 궁궐 이곳저곳에 배치해 둔 것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설명을 보면 화마가 드무에 담아둔 물의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가기 때문에 궁궐을 화재로부터 막아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옛날부터 불은 굉장히 편리하면서도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을 다루는 요괴나 괴물은 일본의 귀녀 키요히메, 베트남의 전설 속 영웅 댕잠의 말, 북유럽 신화의 불의 거인 수르트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불을 다루거나 일으키는 능력 역시 굉장히 매력적인 능력이나 저는 관악한 화마의 불보다는 다른 특성에 매력을 느꼈으니 그것은 바로 시선입니다.
노려보기만 해도 불을 일으키는 능력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눈에 비친 것을 모두 돌로 만들어버리는 괴녀 메두사나 켈트신화에서 눈에 비친 존재를 모두 죽음에 이르게 하는 거인 발로르를 연상시키는 능력입니다. 화마의 능력은 능력 발동을 위한 특정 조건이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즉시 발동이 되며, 쉬운 조건에 비해 위력이 굉장히 치명적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메두사의 석화나 발로르의 즉사는 모두 일격에 상대를 끝장내버릴 수 있는 능력이라 굉장히 치명적인데 바라보는 것만으로 강한 불길을 일으켜 불태워 버리는 관악산 화마의 힘 역시 그에 못지않게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처럼 매력적인 소재를 가지고 있는 관악산 화마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드무에 비친 자신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달아났다고 하는 것을 봐서 보기만 해도 깜짝 놀랄 정도의 흉악한 모습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상세하게 어떤 모습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관악산 화마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요괴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일본을 요괴의 왕국이라고 부릅니다. 일본에 요괴나 괴담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죠. 저는 오랜 시간 한국 요괴를 연구하면서 한국도 일본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많은 요괴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과 달리 요괴의 왕국이라고 불리기는커녕 자국민들조차 한국의 요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여기에는 역사적·사회적인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요괴의 구체적인 형상이 없다는 것도 한몫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일본에는 요괴 그림이 굉장히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는 콘텐츠를 만드는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일본은 그림을 활용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냈고 이를 수출하여 다른 나라들로부터 요괴의 왕국이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전통요괴나 귀신들을 이용한 콘텐츠를 생각보다 옛날부터 계속해서 만들어 오긴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요괴 콘텐츠의 초기 시절에는 도깨비, 이무기, 구미호, 처녀귀신 딱 이 4종류 위주로만 콘텐츠화를 진행했습니다. 이들이 가장 유명하여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고, 이외에는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연구자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한국의 전통요괴나 귀신에 관심이 높아진 것을 여러 매체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디테일하며 구체적인 모습이 없다는 고질적인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으며 이는 앞으로 한국요괴를 소재로 한 콘텐츠 제작자의 앞을 몇 번이고 가로막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문제점을 사람들이 잘 해결해 나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의 요괴나 귀신들을 소재로 한 콘텐츠들을 보면 이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싶은 작품들도 종종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쉬운 작품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첫 시간이기도 하고, 관악산 화마의 스토리가 짧은 관계로 한국요괴의 고질적인 문제점과 콘텐츠 현황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 보았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코너는 이런 부수적인 부분보다 요괴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을 할 것을 약속드리며 오늘은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