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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본 산멕이 3: 문수보살에게 알리다

발행일
2021/11/09
검수완료
에디터
에디터J
코너
산멕이되우재밌잖소
“태백산에서 맞이하면 산신 뫼 짓기 전에 문수밥을 먼저 떠 이게 전통으로 태백산에 생겼어. - D 스님”
지난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지난 번 레터에서는 더러움과 액운을 막는 부정치기 이후 진행되는 하늘맞이와 산맞이를 함께 보았습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마지막 맞이, 문수맞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1.
문수맞이
문수맞이는 이름 그대로 문수보살에게 기도하는 차례입니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입니다. 보살은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고 이 세상을 초월할 수 있지만,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우매한 중생들을 돕기 위해 세상 속에서 자비를 실천하는 존재를 말합니다.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조상님들과 노는 의례에 왜 불교의 보살이 등장할까? 의례의 공간인 하늘과 산의 신들에게 알리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보살에게 왜 산멕이를 한다고 알릴까?
조금 뜬금 없어 보이는 문수보살이 등장하는 이유는 강원도 민속종교의 배경에 있습니다. 앞서 산맞이를 설명할 때, 산멕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과거 문중에서 산멕이를 다니던 산의 산신들에게 산멕이 왔음을 알린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태백산에 산멕이를 다니던 사람들은 태백산을 대상으로 산맞이도 하고, 문수맞이도 한다고 합니다. D 스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여기 태백산 다니다 온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문수맞이를 하고, 안 다닌 사람들은 문수맞이 안 해. (중략) 태백산에서 맞이하면 산신 뫼 짓기 전에 문수밥을 먼저 떠 이게 전통으로 태백산에 생겼어.”
태백산에는 신라시대 이후로 강한 문수신앙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문수보살을 한반도로 전한 여러 스님들이 태백산을 무대로 활동했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태백산에 있던 문수 신앙 때문에 태백산 문수봉에 산멕이를 가던 사람들은 문수맞이를 하게 되었고, 그 모습이 현재 산멕이에도 남아있는 것입니다.
평창 오대산 상원사의 문수동자상 / 출처: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90509)
2.
산멕이 참여자들의 종교적 정체성
태백산에 있던 문수신앙이 산멕이에서 문수맞이를 하는 배경이 된다는 사실은 이해가 되셨겠지요? 그럼에도 아직 의문이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 산멕이를 하는 분들은 불교신자이신 걸까요? 산멕이는 민속종교의 의례라서 불교 의례로 보이지는 않는데, 그럼 이분들은 불교 신자가 아니신걸까요? 우리는 산멕이에 참여하는 분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산멕이에 오랜 시간 동안 참여해온 한 어르신과의 대화 속에서 단서를 얻습니다.
“(불교와 민속종교로) 분리되는 게 아니다. 뭘 하던지 자식들 잘 되면 좋고, 어른들 하는 거니까 하는게 좋은거고. 이치를 따지고 이런 게 크게 (없다.) 이렇게 오래 하다보니까 따로 분리하고 이런 적은 없다.”
산멕이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은 자신들이 불교와 민속종교의 경계에 걸쳐져 있다거나, 이중적인 정체성이 속에서 충돌한다고 이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내려온 전통과 지금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실천적인 차원으로 이해할 때, 불교와 민속종교가 분리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산멕이의 유지와 보존을 돕는 한 스님 역시도 “참여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되지 않는지. 만인이 서로 배척하지 않고 분쟁 없이 행복하면 된 게 아닌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산멕이에 참여하고, 산멕이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종교적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만일 날카로운 시선으로 불교의 신을 왜 모시냐고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지만, 이분들에게는 그 질문 자체가 의미 없어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외부의 조직이나 공동체에서 규정하는 정체성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공동체 내부에서 만들어나가는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에디터 K가 만난 이해경 만신과의 대화 속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8. 신은 인간이 마련한 일종의 도피처를 참고하세요~ 링크~) 이해경 만신은 인간이 가진 위로와 공감의 필요들이 신들을 호출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산멕이에서 다양한 종교적 경험과 정체성을 삶으로 통합하는 것에도 비슷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화려한 주장이 아닌, 내 삶의 구체적인 경험과 판단들이니까요.
두 주에 걸쳐서 산멕이의 세 가지 맞이를 살펴봤습니다. 맞이를 통해 산멕이 참여자들이 가진 성스러움이 복잡하게 얽힌 세계에 대한 시각 그리고 종교적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종교적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구성해나가는 이야기는 산멕이의 생명력을 다루는 이후의 레터에서 다시 이야기를 꺼낼 듯 합니다.
그럼 다음 레터에서는 군웅, 산, 조상들과 화전놀이를 하는 산멕이의 장면을 함께 봅시다. 산멕이의 여러 요소 중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없겠지만, 한 가지 핵심을 꼽자면 아마 다음 주제가 핵심일겁니다. 그럼 다음 주에 인사드리겠습니다.
에디터 J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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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로그 자료창고
김창현, 「고려말 불교의 경향과 문수신앙의 대두」, 『한국사상사학』,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