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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본 산멕이 2: 하늘과 산에게 알리다

발행일
2021/11/02
검수완료
에디터
에디터J
코너
산멕이되우재밌잖소
“이래 오늘 잎이 피니 잎맞이고 꽃이 피니 꽃맞이고 수리영산 화전놀이 들릴 적에 우리 하늘님 전에 한 번 발원도 가보고 문배도 가보고 한 번 이래 가봅시다 "
- 하늘맞이 중 일부
지난주에 에픽레터가 없어서 심심하셨지요? 이번 주부터 산멕이는 다시 시작합니다.
이전 레터에서는 부정을 쫓기 위해 산멕이의 막전막후에서 벌어지는 여러 의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부정을 친 뒤 벌어지는 ‘맞이’들을 살펴봅니다. 장소를 깨끗하게 정화했으면 다음은 신을 모실 차례입니다. 산멕이에서는 여러 신께 산멕이 왔음을 알리고 소리를 듣고 오신 신을 맞이하는 3가지 맞이가 있습니다. 3가지 맞이는 순서대로 하늘맞이, 산맞이 그리고 문수맞이입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하늘맞이와 산맞이를 함께 보려 합니다.
1. 하늘맞이
부정을 세 번이나 치고 나면, 하늘맞이를 합니다. 하늘맞이는 천군맞이라고도 불립니다. 조상과 화전놀이를 왔다고 하늘의 신에게 알리는 과정입니다. 하늘맞이를 진행하는 무녀가 부르는 무가의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보소 년으론 기해년이고 달로는 삼월달이고 일주는 삼짇날이 옳습니다. 이래 사바세계 남섬부주 해동조선을 들어서니 도로는 강원도고 시로는 삼척시로 돌아 면으론 신지면 안날이 대동 안을 들어서니 산은 상두산이 명산이 옳습니다. 이래 오늘 잎이 피니 잎맞이고 꽃이 피니 꽃맞이고 수리영산 화전놀이 들릴 적에 우리 하늘님 전에 한 번 발원도 가보고 문배도 가보고 한 번 이래 가봅시다. 가자가자 영정가자 영정가자 영정가자 (후략) ”
무녀는 가장 먼저 산멕이가 벌어지는 구체적인 시간과 정확한 위치를 하늘의 천신에게 알립니다. 의례를 진행하는 분들께서는 이렇게 하늘에 알리는 것이 소도의 전통이라고 말합니다. 소도는 고대 삼한에 있었던 성역을 말합니다.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신성한 영역이라 왕도 소도에 들어간 범죄자를 잡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소도의 전통이라는 이야기는 산멕이가 진행되는 장소가 역사 속 소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기보다, 일상과 구별된 성스러운 공간이라는 상징을 이어받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멕이를 진행하는 공간이 성스러운 공간으로 여겨진다는 점은 ‘남섬부주’라는 표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가에 등장하는 ‘남섬부주’라는 말은 생소한 표현입니다. 남섬부주는 불교적 세계관에서 세상의 중심인 수미산 남쪽의 섬으로, 100년 수명의 인간이 사는 공간을 말합니다. 산멕이의 참여자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세계를 신화적 세계의 구조 속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도 산멕이를 진행하는 공간이 참여자들에게는 일상적이 않은 성스러운 공간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산멕이는 조상들과 노는 자리지만, 단순히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것과는 다릅니다. 함께 노는 대상인 조상과 신들은 평범한 일상과 동일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2. 산맞이
하늘맞이가 끝난 뒤에는 산맞이를 합니다. 하늘의 신에게 산멕이 왔음을 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산의 산신들에게 알리는 차례입니다. 산맞이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멀리 있는 산에게 알리는 먼산맞이가까이 있는 산들에게 알리는 근산맞이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증이 듭니다. 산멕이는 지금 한 곳의 산에서만 하고 있는데 왜 여러 산들에게 산멕이 왔음을 알리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산멕이의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옛날부터 태백산을 아주 영험한 산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문중마다 산멕이를 갈 때에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문중들에서는 꼭 태백산에 가서 산멕이를 했다고 합니다. 태백산까지 갈 여유가 없는 문중들은 각기 동네마다 다른 산으로 흩어져서 산멕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지방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고 인구가 감소해서 문중마다 산멕이를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산멕이 모습이 바뀌어서 다양한 문중이 한 곳에서 산멕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각 문중이 과거 자신들이 다니던 산의 산신에게 산멕이 왔음을 알리는 과정이 바로 산맞이입니다. 물론 과거에 산멕이를 가던 산이 아니더라도, 근처의 산신을 대상으로 산맞이를 하기도 합니다. 다음 레터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지만, 산멕이의 산은 山, mountain의 산이 아닙니다. 하지만 의례가 진행되는 장소에 있는 산신 역시 큰 존재감을 가진 신이기 때문에 미리 놀러 왔음을 알리고, 함께 놀기를 초청합니다.
각 가정의 제사상을 다니며 산맞이 하는 무속인의 모습.
산멕이는 조상과 함께하는 화전놀이라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습니다. 조상과 함께하는 산멕이에서 이렇게 여러 신들을 맞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예의의 문제일겁니다. 하늘을 위로하고, 산의 한복판에서 의례를 한다면 하늘과 산의 신들에게 인사드리는 것이 순리에 알맞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민속종교가 가진 세계관에는 여러 신들과 성스러운 존재들이 삶의 구석구석에 얽혀있습니다. 내가 직접 제사를 지내는 가까운 조상신, 나의 신화적인 시조, 내가 이전에 다니던 공간의 산신, 내가 지금 서 있는 산의 산신, 모든 공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하늘 등등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 속에는 다양한 신과 신령한 존재들이 얽혀 있습니다. 이런 얽힘 속에서 종교적 열망을 표현하는 인간은 얽혀 있는 모든 존재들을 정당하게 대접할 필요가 있습니다. 산멕이의 경우로 본다면 조상과의 화전놀이라는 종교의례를 하기 위해서, 단지 조상이라는 하나의 대상만 다루면 안 되는 것입니다. 복잡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관계를 맺는 다양한 존재들에게 산멕이라는 잔치와 행사를 알리고 초대하는 게 이치에 맞습니다. 이는 더 많은 관계를 통해 더 많은 즐거움과 복을 바라는 인간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일 겁니다.
어떤 독자께서는 이런 생각이 드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에도 하늘에도 신이 있다고? 에이 말도 안 돼!” 저는 산멕이를 함께 보는 우리가 산멕이의 모든 신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 판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종교학자 윌리엄 페이든의 설명에 따르면, 종교적 표현들은 실험을 통해 분별할 수 있는 객관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라 참여와 호소를 통해 느끼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정말 산에 어떤 신이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산의 신을 향해 의미와 감정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몸짓일 겁니다.
다음 레터에서는 세 가지 맞이 중 마지막에 진행되는 문수맞이를 함께 봅니다.
그럼 다음 주에 인사드리겠습니다.
에디터 J 드림
에픽로그 자료창고
김도현, 「삼척 상두산 산멕이에서 모시는 신령의 성격과 의미」, 『한국무속학』, 2020.